세간에 촛불의 위력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개인적으로 이 정도의 열정과 지속성을 가진 움직임은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집회 및 시위의 방식도 무척이나 세련되었다. 물론 일부 폭력적인 시위대의 행동이 보이기도 하지만, 이는 개인적으로 판단컨대 정부와 경찰의 계산된 유발행동으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사회에서 이러한 촛불집회에 대한 여러가지 입장을 본다. 이러한 집회에 대하여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하며, 마치 자신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양 떠들어대는 "자칭" 지식인(?)들을 보면 헛구역질이 날 정도이다. 그들은 항상 국가가 자신들의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보수화된 오늘날 대한민국 정부의 조치들은 항상 자신들의 이익과는 상충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열성적인 촛불의 움직임에 대해 마지못해 인정하는 듯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는 인정과 불인정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저항의 촛불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궁극적으로는 그들이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촛불은 타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상식선에서 이야기하자. 대의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오늘날의 헌정질서 속에서 정부가, 그리고 국회가 국민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면, 국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대의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회의하자는 주장을 하기에 앞서, 국민들의 요구가 과연 무엇인지를 알려내고 공유해야할 만한 명분과 정당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또한 이전의 집회나 시위에서 볼 수 있었던 것과는 다른 양상들을 우리는 현재의 촛불집회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해학과 풍자, 그리고 문화적인 소통의 요구 양식들은 기존의 폭력 대 폭력의 집회양상과는 다른 새로운 소통의 양식을 제시해 준다. 물론 이것이 좀 더 급진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정해진 제도적 질서 속에서 그만큼의 자유와 저항만을 할 수 있는 근대적 사회 질서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민주주의의 가능성, 즉 대의민주주의의 틀을 뛰어 넘는 제도적 대안들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준다. 이 모든 것이 바로 나이어린 중고교생들의 주장과 행동으로부터,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나가기에도 고단한 생활인들의 주장과 행동으로부터 나온 새로운 대안적 질서의 원형이다.
물론 이러한 촛불집회가 어떤 유명 학자의 지적처럼 수그러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이다. 우리는 이번 기회에 정말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고, 그러한 가능성은 촛불집회에 공감했던 각계 각층의 사람들의 뇌리 속에 도도하게 남아 흐를 것이다. 그것은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거대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아닌 생활정치의 실현으로 궁극적으로는 연결될 것이다. 물론 그 길이 순탄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Posted by 정보꼬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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