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전쟁과 입법학

* 주: 이화여대 대학원신문63호. 학보에 실리는 글이라, 입법학의 좀 더 적극적인 취지를 밝히지 못한 것 같아 못내 아쉽다.

열정의 상실

최근 국회에서는 입법전쟁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입법전쟁이라고 하니 무언가 비장한 분위기가 흐른다. 그러나 너무 우습게도 입법전쟁은 무엇을 입법하느냐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치권의 세력다툼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은 누구나 인식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입법할 것인가, 그리고 어떠한 입법절차를 거치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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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

우리는 흔히 법이라는 것의 이면에는 이미 전제로 하고 있는 기본적인 내용 및 원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진보의 견해를 취하든 보수의 견해를 취하든 마찬가지이다. 그러면서 “법대로 하자”라는 주장을 자주하곤 한다. 이렇게 되면 입법의 영역에서는 어떠한 이론(理論)도 필요 없는 것이 되며, 항상 주어진 법과 구조 속에서 현실의 주어진 문제를 풀어나가는 소극적이면서도 수동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 종국에는 세상의 긍정적인 변화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리게 된다.

인공물로서의 법과 입법

조금만 현실적으로 시선을 돌려본다면, 법이라는 것은 미지의 신화적 존재가 만들어서 인간 세상에 선사해 준 것이라기보다는 인간들이 그 스스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 내기 위해 고안해 낸 것이고, 인간들에 의해 그 내용이 변화되어가는 것이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결국 법과 그것에 바탕을 둔 사회적 구조는 인간이 만들고 또한 변화시키는 것, 즉 법과 제도는 인간들이 만들어 낸 인공물인 것이다. 그런 이유로 법과 그에 대한 해석은 순수하게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일 수 없다.

그렇다면 법학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기존의 법학은 대부분 사법판결에 그 초점을 두어왔다. 이미 형성된 법을 어떻게 해석하여 문제에 적용할 것인가에 그 초점을 맞추어 온 것이다. 이를 달리 말하자면, 전통적인 법학은 법을 어떠한 방식으로 해석·적용해야만 모두가 수용 가능한 객관적이면서도 중립적인 해석이 가능할까라는 문제에 집중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인식을 통하여 우리는 법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그러나 이미 언급했던 바와 같이 법 자체가 순수하게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일 수 없다면, 우리는 오늘날 법적사고의 기본적 출발점, 즉 법형성에서부터 새로운 고민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입법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이 법학의 한 세부 분과로 새로이 등장 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입법학

입법학이라는 것은 법형성의 과학성을 증진시키는 것을 기본 목적으로 하는 학제적 학문분과라고 정의된다. 만일 법이 순수하게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일 수 없다면, 법에 있어서의 과학성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그러한 과학성이라는 것은 과연 가능한 것인가? 이러한 의문들은 입법학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보통 입법에 있어서의 과학성이라고 한다면 크게는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형성된 법 그 자체가 가지는 예측가능성과, 다른 하나는 형성된 법의 효력 또는 적용결과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그것이다. 전자는 입법기술론, 즉 얼마만큼 사회적인 명확성을 지니는 법적 언어로 법을 실정화 시킬 것인가의 문제이고, 후자는 입법평가론, 즉 그 법이 당초 의도했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에 대한 (법)정책적 평가를 의미한다. 입법기술론과 입법평가론은 입법학의 학문적 정립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진정한 의미의 입법전쟁

사회는 점점 보편자에서 개별자로, 단일한 합리성에서 경쟁적 합리성으로 발전해 간다. 그러다 보니 혹자들에게는 오늘날 각기 다른 정치적 주장들이 사회적 혼란으로 비춰지곤 한다. 떼법 등의 최근 보수적 유행어는 바로 그러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누군가의 말처럼 “떼법은 없다.” 오히려 정치적 논의에 있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다양한 정치적 의견들을 경쟁시키고 새로운 합리성과 과학성의 의미를 입법의 영역에서 도출해 낼 수 있는가이다. 이러한 바탕 속에서만이 진정한 의미의 입법전쟁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정보꼬뮨

2009/05/11 01:58 2009/05/11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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