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브뤼셀 관광
- Posted at 2009/10/26 19:22
- Filed under 입법이론
10월 24일(토)
오늘은 오전 느즈막히 밖으로 나가, 이곳저곳 브뤼셀 중심지를 돌아다녔다. 벨기에라는 곳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우리나라와 비슷한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장시간의 외침과 뒤 늦은 독립이 그 이유인 듯싶다.
딱히 누구에게 가이드를 받는 여행길이 아니기 때문에 여행 안내 책자를 하나 구해, 그곳에 나온 내용들을 기반으로 돌아다녔다. 우선 내가 이용하고 있는 대학의 연구실 근처에 있는 성 미셸 대성당 근처서부터 시작하기로 하였다. 아마도 토요일인지라 우리나라에서처럼 결혼식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건물은 1226년부터 건설하기 시작하여 15세기 말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성 미셸 대성당

성 미셸 대성당 내부

나의 애마와 동일기종(?)

플래시 몹
그랑 플라스 광장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 수학여행을 온듯한 학생들이 꽤 많았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뾰족하게 높이 솟은 첨탑을 가지고 있는 시청사였다. 이 시청사 건물은 그간 내가 연구실에 드나들면서 창문밖으로 보이던 그 건물이었다. 이제사 가까이서 그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서도 누군가가 결혼식을 한 듯했다. 학생들은 연신 "키스, 키스"를 외쳐댔다. 이 시청사 건물은 15세기에 건축되어, 17세기에 파괴된 이후 18세기에 재건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높이 솟은 첨탑에는 브뤼셀의 수호성인인 성 미셸 상이 걸려있다고 한다.

브뤼셀 시청사(그랑 플라스 광장)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브라반트 공작관이었다. 이 건물은 1628년에 바로크양식으로 건설되었으며, 1882년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이 건물은 6채의 길드 하우스를 합친 건물이라고 한다. 정면에 역대 브라반트 공작이 장식되어 있어 이름을 이와 같이 지었다고 한다.

브라반트 공작관
다음으로 간 곳은 성 니콜라스 교회였다. 이 교회는 11~12세기에 시장의 교회로 건축되었고, 16~17세기의 전쟁을 겪으면서 파괴되었다가 1955년에 재건한 것이라고 한다. 이 건물의 외부사진은 애석하게도 찍지 못하고 내부 사진만 찍었다(우천이 원인).

성 니콜라스 교회 내부
다음으로 벨기에 브뤼셀의 명물인 오줌누는 소년상을 보러 갔다. 가는 길에 빈센트 반 고흐의 모습을 한 동산이 있었는데, 그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은 그것이 진짜 동상인 줄 알았다. 근데 갑자기 움직이며 여러사람을 놀라게 했다.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직접 포즈를 취해주고는 앞에 있는 노란통에 돈을 달라고 한다.

살아 있는 동상
오줌누는 소년상은 1619년 작품이라고 하며, 이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설화가 전해진다고 한다. 영국과 프랑스에 도난당하는 수모를 겪은 후, 루이 15세는 사과의 의미로 금으로 만든 옷을 선물했고, 그 이후 이 동상은 600벌이 넘는 옷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오줌누는 소년상
다른 곳을 찾아가는 길에 브뤼셀 의회를 발견했다. 매우 단촐한 모습의 건물이었다.

브뤼셀 의회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프티 사블롱이었다. 이곳은 길드를 상징하는 48개의 동상이 주위에 배치되어있었다. 이 동상들은 각기 다른 모습들을 하고 있었으며, 오래된 세월을 말하듯 상당부분 부식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부 중앙에는 스페인의 압제에 저항하다 처형된 에그몬트 백작과 반 호른 백작의 상이 서 있었다.

프티 사블롱
프티 사블롱 앞에는 노트르담 뒤 사블롱 교회가 있었다. 이 교회는 12세기 정도에 만들어졌고 1436년에 고딕양식의 교회로 다시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이곳 뒤편에는 골동품을 파는 노점상들이 있었고, 교회를 바라보고 시내 중심가쪽으로 조금만 가다보면 왕립 미술관도 있었다. 이 교회에서도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노트르담 뒤 사블롱 교회

노트르담 뒤 사블롱 교회(내부)
직업이 직업인지라, 대법원 건물을 찾아갔다. 이곳 브뤼셀 대법원 건물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걸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찾아가면서 발견한 것은 대법원 건물이 공사중이며, 앞쪽에 다른 건물을 대법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물론 누가 설명해 준 것이 아니라, 건물에 표시가 그렇게 되어있었다. 따라서 정확한 사실이 아닐 수 있다). 새로운 대법원 건물 주차장 입구에는 아래 사진과 같은 낙서가 있었다. 이런 정도의 낙서는 브뤼셀 어디를 가든 너무나도 쉽게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걸 그대로 둔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참을 지나고 보면 그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대법원 신청사(?)에 있는 낙서
아래 사진은 공사중인 벨기에 대법원 건물과 그 앞의 무명용사의 탑이다. 벨기에 대법원 건물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면서 관찰해 보았다. 사실 이 건물은 꽤나 웅장한데 그 어디에도 대법원이라는 표시가 되어있지 않아 두리번 거린 것이었다. 정문쪽 내부도 들어가왔는데 아무런 통제가 없었다. 너무나도 웅장한 모습이었고, 대법원 앞 광장 한편에는 높은 언덕이 있고 그곳에서 브뤼셀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벨기에 대법원
다음은 벨기에 왕궁으로 향했다. 벨기에 국왕이 집무를 보는 곳이라고 한다(현재 국왕은 라켄궁전에 산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1904년경 레오폴드 2세가 재건한 것이라고 한다. 직접에 보고 왔던 대법원에 비하여 정말 작은 규모의 궁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벨기에 왕궁

브뤼셀 공원
그리고 그 브뤼셀 공원 맞은 편에는 벨기에 국회의사당이 있었다. 이 또한 기대했던 것보다는 매우 작은 규모라는 생각을 했다. 특이한 것은 삼각형 모양의 지붕에 새겨진 조각에 있는 저울 등이 금색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벨기에 국회의사당

벨기에 국회의사당 지붕 문양

루아얄 광장
몽 데 자르는 국제회의장과 왕립도서관 사이에 있는 정원이다. 몽 데 자르의 뜻은 예술의 언덕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언덕에서는 도심의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몽 데 자르
이곳을 내려가 도착한 곳은 중앙역(기차)였다. 이곳은 벨기에의 대표적인 건축가라고 하는 오르타라는 사람이 설계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역사는 현재 보수공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결과 외관은 볼 수 없었다. 다만 역내 중앙 벽에 있는 기념비를 볼 수 있었는데 이는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희생된 철도관계자 3012명을 기리는 기념비라고 한다.

중앙역(기차)
식사를 하고 숙소로 가기 위하여 드브루케르 역 근처로 내려가는 길에 왕립 모네 극장을 볼 수 있었다. 설명에 따르면 유럽에서도 1, 2위를 다투는 오페라 극장이라고 한다. 1830년 스페인에 저항하는 독립운동이 일어난 장소라고 한다.

왕립 모네 극장
마지막 사진은 드브루케르 역 근처의 거리 사진이다. 마치 이곳은 명동과 비슷한 곳으로 많은 상점과 백화점들을 볼 수 있었다.

드브루케르 역 근처 거리
Posted by 정보꼬뮨
- Tag
- 관광, 브뤼셀, 사진
- Response
- No Trackback , No Comment
Trackback URL : http://infocommune.net/legisprudence/trackback/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