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의 아젠더 셋팅 능력

다소 고전적인 시각이지만 3권 분립이라는 관점에서 현재 입법의 상황을 바라보자면, 우리의 국회는 아젠더 셋팅 능력을 상실한 것 같다. 특히 최근 논란이 일고있는 세종시 문제에 있어 국회는 정부의 입법 아젠더 셋팅에 끌려가고 있는 듯 보인다. 물론 국회의원 중 여당의원들은 정부의 입법 의지와 정책 추진 의지를 뒷받침해 주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사실상 비판적 검토보다는 당리당략적인 논쟁이 그들의 관심인 것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정책적 입법적 의제를 국회가 주도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국회가 항상 정부측의 의견과 대립할 필요는 없다. 다만 여당 국회의원이건 야당 국회의원이건 정부의 정책 입안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과연 그러한 의회의 기능은 누가 담당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야당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정책적 아젠더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정치 싸움에 소모전을 펼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것이 정부측의 여러가지 통제에 가로막혀 그렇다고 할 수는 있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국민들의 심리와 마음을 반영한 정책적 논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국회의 아젠더 셋팅 능력에 회의를 품기에 충분한 것이 바로 청부입법(대명발의입법)이다. 청부입법이란 정부에 법률안 제출권이 부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안 제출에 있어 절차상 소모되는 시간이나 노력을 절감하고자 의원의 법안 발의권을 통해 법률안을 발의하는 형태를 말한다. 사실상 많은 청부입법의 사례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어떤 법안이 진정으로 청부입법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통계를 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것은 어느 의원도 자신의 법안을 제출하면서 명시적으로 이것이 청부입법이다라고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청부입법 그 자체가 국회의 구성원으로서 국회의 자율성을 저해한다는 오명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와 여당이 협력하여 법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청부입법이 행해질 수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으며 또한 부정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청부입법에 대해서는 좀 더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제 정부형태와 유사한 우리나라와 같은 국가에서 정부측에 법률안 제출권이 부여되고 있는 것은 매우 특이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청부입법이 필요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와 의회와의 사이가 반드시 대립만을 하는 것은 아니고 협력을 요하는 측면에서 보자면, 행정권력 내부의 법안의 성안과 발의 절차에 있어 소요되는 난점들을 해결함과 동시에 의회 권력과의 협력을 통해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는 제도적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러한 청부입법의 문제는 이 사안과 마주하고 있는 의원들의 태도에 있다. 자신이 발의(단독 및 공동 발의)한 정부측 법안이 어떠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있으며, 최근 보도에 따르면 자신이 대표발의한 법안에 반대표를 던지기도 한다. 이는 의원들 스스로가 국회의 대정부 견제기능을 저버리는 처사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정부측과의 협력을 요하는 문제 도는 법안이라고 할지라도 비판적 시각에서 정부측의 법안을 검토하고 적절한 협력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의원들의 자질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행정권력과는 달리 의회권력은 그 구성 자체가 매우 다양하다고 할 수 있으므로 특정 입법 아젠더를 설정하고 추진하기가 용이하지 않은 면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처럼 거의 대부분의 입법적 논제들을 행정권력에게 빼앗긴다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국회는 특정 정책 목표를 추진하기 위한 아젠더를 설정이 아니라, 국민들의 생활과 관련한 문제점들을 선도적으로 발굴하여 국회 숙의 과정에서 논의하여할 논제로 만드는 아젠더 설정이 필요하다. 그것이야 말로 생활 정치의 실현이고, 사회가 전문화 복잡화 되면서 실추되고 있는 국민들과 의회 사이의 관계 회복의 길이다.

Posted by 정보꼬뮨

2010/01/29 08:52 2010/01/29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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