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좌담] 국내 입법학의 현주소와 나가야 할 방향
- Posted at 2010/12/15 22:19
- Filed under 입법이론
김형성 교수(성균관대로스쿨)
룩 빈트겐스 교수(벨기에 브뤼셀가톨릭대)
"다원화된 사회에서의 입법은 제한적 합리성 불가피"
| 최근 국내에서 법령의 실효성과 수용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입법학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일례로 한국법제연구원은 지난 2007년 입법평가연구센터를 개설해 입법평가에 대한 이론적이고 실무적인 연구를 실시해 오고 있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입법학연구가 진행돼 온 유럽에 비해 국내의 입법학연구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이에 법률신문은 입법학연구소와 공동으로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룩 빈트겐스 벨기에 브뤼셀가톨릭대학교 교수와 국회 입법조사처 초대 처장인 김형성 성균관대로스쿨 교수를 초청해 국내 입법학의 현주소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점검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달 24일 방한한 빈트겐스 교수는 유럽 입법학연구의 선두주자로 입법이론(Legisprudence)으로 유명한 석학이다. 장철준 한동대 법학과 교수가 사회와 통역을 맡았다. |
룩 빈트겐스 교수= 입법학(Geset zgebungslehre)의 선구자인 스위스의 피터 놀(Peter Noll)은 형법적인 접근과 도구주의적인 접근을 중심으로 입법학을 연구했다. 반면 입법이론(Legisprudence)은 규범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그 결과 실정법학적 측면과 과학성을 강조하는 도구주의적 측면보다는 규범적인 정당화(justification)의 측면을 강조하는 입장에 있다.
장 교수= 최근 입법학에서는 과학성을 강조하는 측면에서 ‘입법평가’ 제도가 강조되고 있다. 입법평가제도가 갖는 의미와 바람직한 발전방향은 무엇인가.
빈트겐스 교수 = 입법평가제도 필요성 논의가 커지고 있는 것은 입법의 합리화를 위한 중요한 노력으로 상당히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합리성은 단지 사실적인 측면에서만 확인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평가방법 및 도구의 과학성만을 추구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시간적 또는 인지적 한계 등으로 인한 제한적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이 인정돼야 한다고 판단한다. 또 제한적 합리성은 ‘정당화’와 그 ‘절차(process)’를 거쳐 보완될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이는 곧 입법학과 입법이론의 차이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입법적 판단의 문제는 단순한 정치적 또는 정책적 판단과는 다른 규범적 측면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형성 교수= 교수강의평가, 환경영향평가, 부패평가, 행복지수평가, 공공기관평가 등 공공성을 띠는 사회 모든 영역에서 평가제도가 적용되고 있다. 대의민주제 하에서 의원의 의정활동과 입법활동이 어떠한가를 평가하는 의정평가제도나 입법평가제도는 국민의 알권리 충족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다. 다만 그 평가를 누가 맡을 것이냐 하는 전문성과 중립성 확보가 핵심적 관건이 아닐까 싶다.
장 교수= 최근 한국에서는 이른바 ‘미디어법’판결이 있었다. 국회에서 심의·표결권이 침해된 입법의 유효성을 인정한 판결이었다.
김 교수= 실질적 의미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되는 경우, 심각한 입법절차적 하자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는 절차상 하자를 가지는 입법에 대한 국회의 재입법 의무를 부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입법부의 재량적 판단을 존중하겠다는 취지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판단을 회피한 것이라 본다.
빈트겐스 교수= 헌법재판소의 사법적 개입은 과연 정당화의 과정을 제대로 거쳤는가, 그리고 그러한 논증의 과정은 적절한 것이었는가의 문제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심의의결권이 침해되고 절차상 하자가 있는 입법은 논증의 과정 내지 정당화의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명확한 지적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 교수= 한국 사회는 최근까지 매우 빠른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발전이 있어왔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다양성 또한 급진적으로 증대됐다. 이러한 측면에서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입법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겠는가.
빈트겐스 교수= 다원주의가 강조되는 맥락은 앞서 입법이론이 정당화를 강조한다는 측면과 연결되어 있다. 이 부분에서 강조돼야 할 점은 특정의 고정된 합리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화의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제한적 합리성을 강조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 완벽한 사람도, 완벽한 사상도, 완벽한 사회도, 완벽한 입법도 존재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빈트겐트 교수가 강조하신 제한적 합리성이라는 것도 수긍이 간다. 하지만 제도보완과 갈등해결을 위한 끊임없는 시도와 실험은 계속돼야 한다. 제한적 합리성 보다는 정당화의 과정 그리고 개선주의적 노력의 과정에 무게를 두고 이해하고 싶다.
장 교수= 최근 한국의 법학교육제도가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입법지식교육에 대한 중요성도 증대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 교수= 한국은 새로운 법학교육의 모델로 미국식 로스쿨제도를 도입했다. 로스쿨시스템의 도입과 함께 공공 거버넌스(public governance)라는 측면에서 입법학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는 동일한 규범창출성을 지향하지만 사회갈등을 해결하는 방법과 효과측면에 있어서 크게 차별화된 지식체계를 갖는 사법학과 입법학이 서로 보완적으로 균형점을 찾으려는 흐름이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빈트겐스 교수= 한국에서의 법학교육의 변화는 민주주의와 법의 관계에 있어 상당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로스쿨 교육프로그램에 있어서도 단순히 사법학과 사법적 분쟁해결 절차나 지식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분쟁예방적 절차와 지식을 다루는 입법학 또는 입법이론에 대한 교육이 상당히 중요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장 교수= 최근 민주당 양승조 의원이 ‘의회대학원(parliamentary graduate school)’ 설치를 주요 골자로 하는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의회대학원은 입법학 내지 의회학 교육을 통한 입법전문인력 양성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빈트겐스 교수= 한국사회와 의회제도의 괄목할만한 진화의 속도를 보는 듯하다. 벨기에와 스위스 그리고 독일 여러 대학에서 입법학교육이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네덜란드의 경우, 공무원들에게 국가적 차원의 재정적 지원을 통해 1년 간의 입법학 학위과정(LL.M.)을 지원하고 있다(European Academy for Law & Legislation).
김 교수= 입법고시보다는 장기적으로 다양한 민간전문가들이 적절한 입법법제지식 내지 의회행정교육을 받고 입법관료로 활동할 수 있는 개방된 의회인력충원제도를 강구할 필요가 있다. 고급 민간전문가들을 입법조사관으로 기용하는 입법조사처의 인력충원방식과 같아야 한다. 의원보좌관 인력도 마찬가지다. 공정성과 너무나 거리가 먼 현행 보좌관임용방식도 획기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장 교수= 최근 대한민국 법률가 사회에서도 입법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법률가들이 입법학과 입법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유럽의 경우 입법활동에 변호사자격자의 참여율과 참여형태가 어떠한지 궁금하다.
빈트겐스 교수= 유럽 대부분 국가의 입법형태는 정부입법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 점이 유럽과 한국의 입법현실이 가지는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본다. 벨기에의 경우, 법률전문가들 상당수가 법의 입안 및 개정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정부입법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이들의 참여는 상당한 비중과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장 교수= 입법에서 중요한 것은 수용성과 명확성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법조문의 명확성에 대한 논란이 벌어진 바 있다. 수용성과 명확성을 높이기 위한 유럽의 입법학발전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빈트겐스 교수= 모든 법적인 언어는 해석이 필요하다. 아무리 상세히 법조문이라도 일정 부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입법이라는 것은 끊이지 않는 정당화의 연속선상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몇몇 전문가들의 판단결과를 통해 입법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논증의 과정을 통해 그것에 대한 비판과 타협이 이뤄져야 한다. 수용성과 명확성이라는 것은 이런 방식으로 접근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 교수= 한국을 방문한 소감은.
빈트겐스 교수= 한국 사회의 발전은 그 만큼의 입법적인 문제들을 발생시키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방문이 앞으로 한국의 법률가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Posted by 정보꼬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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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성, 빈트겐스, 입법이론, 입법학, 장철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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